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는 의사의 아들로 칼키디케 섬의 스타 기로스에서 태어나 '스타기리인Stagirit 이라고도 불렸다. 그는 17세 부터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서 20년 동안 공부했다. 그 다음에 레스보스 (소아시아의 섬)에 잠시 체류하다가 기원전 342년에 마케도니아의 필피 포스 궁정에서 14세 된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 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해외원 정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 그는 아테네로 귀국해서 기원전 334년 리체움에 자신의 학교 리케이온 Lykeion을 세웠다. 그는 이 학교의 아치형의 지붕이 있는 산책길을 학생들과 산보하면서 철학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때문에 이들은 '페리파틱스(Peripatetics. 소요자)' 라는 별명을 얻었다. 알렉산드로스 가 사망한 후에 그는 소크라테스처럼 신성모독죄로 고소당했고 얼마 지나 지 않아 망명 중에 사망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주의자 플라톤의 현실주의적 쌍둥이 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데아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 간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그 차이를 일반화했다. 이 새로운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 그는 플라톤의 사상을 약간 수정함으로써 아주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즉 그 는 이데아와 현상이라는 단어 대신에 형상과 질료(質料)라는 단어를 사용했다.이 차이는 두 세계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 내에 함께 존재한다. 예컨대 진흙은 질료이지만, 벽돌은 형상이다. 그러나 이 벽돌은 또 다른 형상을 위한 질료가 될 수 있다. 즉 벽돌은 진흙의 형상이지만 집의 질료다. 오늘날의 이론(예컨대 시스템 이론)은 형식과 매체에 관해 말한다. 음성은 언어의 형태를 위한 매체이고, 언어는 텍스트의 형태를 위한 매 체이며, 텍스트는 시행(詩衍) 따위의 형태를 위한 매체다. 이와 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을 질료- 형상 관계의 연속 단계들로 정리했다. 이 단계들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들을 계속적으로 규정해나가는 과정을 일컬으며, 가능한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계속적으로 넘겨주는 과정 이거나, 또는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비개연적인 것을 개연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수다스런 잡담에서 시(詩)가 생겨날 수 있는데, 이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Daid」 상이 대리석 덩어리에서 생겨나는 것과 똑같은 원리다. 형상은 질료를 잠에서 깨워 긴장된 존재가 되게 한다(오늘날 사람들은 요소들의 느슨한 결합 그리고 긴밀한 결합에 관해 말한다. 소음은 느슨하게 결합된 소리들이며, 언어는 이것들이 엄밀하게 결합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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