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로마의 통치자는 동등한 권한을 갖는 두 명의 집정관으로, 이들은 해마 다 새로 선출되었고 군(軍)의 최고 통수권자를 겸했다. 최고의 국가기관은 원로원이었다(처음에는 정원이 300명이었고, 후에는 그 수가 늘었다). 의원들은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집정관이 퇴직한 국가공무원들 중에서 골라서 종신 직으로 임명했다. 공화국 시대에는 이 원로원에 국가권력이 집중되었다(예 산권,대외정책, 전쟁 및 평화 결정권, 지방 감독권 따위).
그 밖에도 현대의 정부 각료와 비슷한 직책이 있었다. 검열관들은 도덕 및 납세를 감독했고 공공건물들의 운영을 맡았다. 감찰관은 경찰청장에 해 당하며 국가의 경기대회들을 관장했다. 재무관은 국고를 관리했고 사법부는 대법관이 맡았다. 이런 직책을 맡은 사람은 보라색 띠를 덧두른 토가 toga를 입었고, 이들의 뒤에는 '띠를 칭칭 감은 도끼인 파스케스fasces'를 권력의 상징으로 어깨에 메고 다니는 시종이 따라다녔다. 로마 제국의 이 상 징을 무솔리니가 수용해서 당의 표장(標章)으로 삼아, 그의 추종자들은 나중에 파시스트로 불리게 되었다.
호민관들은 특별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들은 오늘날의 경영 참모와 비슷한데 국민을 관료주의에서 보호했다. 그들은 국가의 정책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평민 집회에 자신의 결의안을 제출할 수 있었다. 공화국 말기에 그들은 오늘날의 노조 대표들과 마찬가지로 정치를 방해하는 봉쇄 전략에 치우쳤다.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241, 기원전 218~201)
로마 최초의 국난 극복 드라마와 강대국으로의 상승은 1차 및 2차 포에니 전쟁을 통해 완성되었다. 상대국은 페니키아의 상업민족(이들은 나중에 카르타고인이라고 불렸다)으로 수도는 카르타고(오늘날의 튀니스 근방)였다.
로마는 이들로부터 1차 전쟁(기원전 264~241) 때에 시칠리아를 빼앗았다.
2차 카르타고 전쟁(기원전 218~201)은 극적으로 진행되어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카르타고의 한니발 Hannibal장군이 한때 대담하게 로마를 점령하고 거의 무력화시켰다가 패망했기 때문이다. 전쟁터를 이탈리아로 옮겨놓기 위해서 그는 10만 병력과 37마리의 코끼리를 이 끌고 남프랑스를 횡단했고, 2주일 만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 자신의 군대도 많은 손실을 입었지만 이탈리아의 트라시메노 호수에서 로마 원로원의 군대를 전멸시켰으며, 또 칸나이에서도 로마 군대를 대패시켰다. 이후 로마인들은 그가 로마를 공격할까 봐 두려워했다("한니발이 문에 서 있다” 문 앞으로 오고 있는 중이 아님. 위기가 바로 코앞에 있다는 뜻. 키케로Cicero의 1차 전쟁 연설에서 인용).
헌법과 포에니 전쟁 리포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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