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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릴의 안내

(북클럽/교양) 모두의교양 / 레오와 미켈

by 거제매생이 2020.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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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e da Vinci, 1452~1519)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 장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 Mong Lisa(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소장)를 그렸다. 그는 르네상스의 이상적 인간형인 보편 천재였다.그는 건축가, 전함 따위 의 발명가, 경지에 도달한 디자이너, 불굴의 자연 연구가, 착상이 풍부한 엔지니어 그리고 천재적인 화가였다. 그는 의상과 보석을 디자인했으며, 프레스코 벽화와 초상화를 그렸고, 관개수로를 건설했고, 욕실을 설계했 고, 마구간을 채색했으며, 마돈나 회화(성모 마리아를 그린 그림이나 조각한 소상(塑像. 흔히 아기 예수를 안고 있음 옮긴이)을 그리고, 제단을 제작했다.

그는 밀라노에서 자신의 가장 유명한 그림들 중의 하나인 최후의 만찬 Last Supper」을 그렸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가너희 중의 한 명이 오늘 나를 배반하리라”라고 말하는 순간의 제자들을 보여준다. 다 빈치는 그다음에 피 렌체로 가서 라이벌인 미켈란젤로와 경쟁했다. 동일한 연회실 한쪽 벽에는 다 빈치가, 마주보고 있는 다른 쪽 벽에는 미켈란젤로가 벽화를 그렸다. 그 결과, 다 빈치가 패했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은 색깔이 바래서 흐려졌기 때 문이다. | 이 시기에 그는 3년 동안(1503~5) 피렌체의 조콘다 부인을 자주 자기 아 틀 리에로 불러들여 그녀의 우울한 미소와 신비스러운 얼굴 표정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모델을 설 때마다 그는 음악가들을 불 러 연주하게 함으로써 그녀의 무거운 표정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로써 그 는 회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소를 완성시켰다. 히스테리에 걸린 사람들은 이 그림 앞에서 권총자살을 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 페이터Pater는 이 미소에 인류의 모든 체험이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모나리자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조콘다 부인은 아마도 화가의 비밀에 대해 반어 조로 미소를 짓 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다 빈치는 호모였기 때문이다.

또 그는 변덕스러웠으므로 프로이트가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그는 변 덕 때문에 어떤 작품이든 완성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는 모나 리자도 완성되지 않았다며 한참동안 자기가 가지고 있었다. 그 점말고는 그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는 힘이 장사였다. 말발굽을 맨손으로 구부 렸고, 승마와 펜싱을 잘했다. 우아한 옷을 중시했고 왼손으로 글씨를 썼어며 진기한 물품을 좋아했고 호기심이 무척 많았다.

화가로서 그의 시선은 아무런 편견도 없었으며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기괴한 것, 추한 것을 모두 포착했다. 그는 물살의 소용돌이, 구름, , 바 위, 꽃덩굴, 감성, 기류(氣流) 따위의 모든 역동적인 현상들에 매료되어 있었다.그는 항상 비행(飛行) 문제에 몰두했다. 그는 비행기구, 낙하산, 압연 기, 만능 스패너, 곡식 찧는 절구, 기관단총, 잠수함 그리고 증기 대포(大)를大) 설계하거나 제작했다. 그는 열 학(熱學),熱學), 음향학, 광학(光學), 기계 역학과 수압학(水壓學)에 몰두했으며,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를 동물과 비교했고, 인간의 장기, 혈관 그리고 신경섬유를 그린 수많은 도면을 완성했다. 그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가장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 중의 하나였으며, 아마도 라이프니츠나 괴테와만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의 결정적인 출세는 극적으로 이루 커졌다.어느 날 그가 수습공으로 반인반수의 목양 신을 조각하고 있을 때, 때마침 로렌초 메디치 Lorenzo Medici가 그 곁을 지나가다가 비판조로 한 마 디했다. “그렇게 나이 많은 노인이 어떻게 그런 완벽한 턱 구조를 가질 수 있나?”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망치를 휘둘러 단번에 목양 신의 윗니 하나를 부러뜨렸다. 기질과 재치의 조합에 감동한 메디치는 그를 자기 집으로 불 러들였다.그러나 미켈란젤로 거기에서 다툼을 벌이다가 자신의 코뼈를 으 스러뜨렸다. 그는 파두아와 로마로 갔으며, 거기에서 대리석상 「피에타 Pietà(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상)를 창조했다. 피렌체로 되돌아온 그는 이곳에서 2년 동안 대리석 덩어리와 씨름을 계속하여 그 속에 숨어 있던 다비드 David를 해방시켰다(복제품은 베치오 궁전 앞에 서 있으, 원본은 피렌체의 예술 아카데미에 있다). 그 다음에 그는 시스티나 성당의 내벽을 모두 단장해달라는 교황 율리 우스Julius세의 의뢰를 받았다. 성당 천장에 구약의 가장 유명한 장면인 천지창조를 그는 높은 받침대에 누운 자세로 그렸다. 거기에는 하느님 아 버지가 오른손을 길게 내뻗어 아담을 창조하면서 아담의 축 늘어진 손가 락과 닿고 있는 장면, 아담과 이브의 타락, 술 취한 노아의 모습 등등 구약의 정신이 담긴 모든 것들이 선지자의 밝은 눈으로, 다시 말해서 회화적으 로가 아니라 조각예술적으로 그려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세계 창조의 그림 속에 화가로서의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함께 쏟아부었다. 세계 탄생의 배후에 있는 역동성, 힘이 거기에 담겨 있으며, 오로지 인간의 신체 속에서만 표현되는 고뇌가 그려져 있다. 대략 50명의 남녀의 나체가 거기에 담겨 있으며 풍경이나 식물 따위는 없다. 모 든 것은 근육의 힘이다. 그의 근육질 몸들은 관능적인 것이 아닌 강력한 것이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였으며, 조각가이자 보디빌딩 코치였다.

그는 몇 년 동안 교황과 끊임없이 싸워가면서 작업을 했다. 교황이 그 천장화를 보고자 미켈란젤로에게 받침대를 어서 철거하라고 재촉했기 때 문이다. 미켈란젤로가 거부하자 교황은 그를 받침대에서 떨어뜨려버리겠 다고 위협했다. 마침내 교황이 그것을 보는 순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고 생각했다. 그는 죽기 전에 역사상에 창조되었던 것들 중에서 가장 위엄 있는 예술작품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모든 회화적 요소들, 장식 · 풍경 · 아라베스크 문양 · 건 축양식적 배경 등 일체의 부수적인 것들을 포기하고 오로지 인간의 몸에 만 집중했다. 그의 회화들은 구약과 신약의 정신을 호흡한다. 거기에는 르 네상스의 전형적인 밝음과는 대비되는 음울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미켈란 젤로는 바로 이 요소 때문에 르네상스의 위대한 예술가들 중의 하나다. 그 는 신들린 사람처럼 작업에 몰두했다. 제 몸을 돌보지 않았고, 잠잘 때도 옷을 입은 채로 잤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그는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훌쩍 늙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거의 90세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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