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때부터 파비우스(Fabius. 일명 '지연시키는 자)의 지휘 하에 공식적인 전쟁을 피하고 적군을 지리멸렬하게 만드는 빨치산 전술이나 게릴라 전술을 펼쳤다. 이것은 외국군들이 보급물자를 공급받기 어렵게 함으로써 전세를 로마에 유리하게 만들었다(파비우스의 이름을 따라 페이 비언 협회Fabian Society가 생겨났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지적인 게릴라 전술을 통해 영국의 지식인들을 사회주의자로 전향시키는 것을 모토로 삼았다). 그 다음 에 스키피오 Scipio가 전쟁터를 아프리카로 옮겨가자, 한니발은 본국으로 소환되었고 자마 Zama전투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한니발은 그 후에도 반(反) 로마 동맹을 결성하고자 했고, 로마는 그의 신병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망명을 떠나 자살했다. 그는 아주 독창적이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 낭만주의자였다. 그는 본의 아니게 로마가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 상하는 것을 도와준 꼴이 되었으며 알렉산드로스의 그리스 유산을 물려받는 후계자가 되게 해 주었다.이제 우리는 기원전 200년에 도달했다. 그 뒤를 잇는 70년간(기원전 120년까지)에, 로마는 점령한 나라들(카르타 고, 스페인, 마케도니아, 그리스와 소아시아 지역(시리아와 이집트는 서로 싸우다. 함께 망했다)을 로마 제국의 직할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로써 헬레니즘 문화가 로마에 정복되었다.
심각한 정치적 위기와 카이사르 제국의 도래
식민지로부터 거둬들인 조세는 관료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갔으며, 이 들은 이 돈을 자신의 관직을 사들이는 데 들었던 엄청난 비용의 충당에 사용했다. 그래서 현대의 미국처럼 자신이 부유하거나 아니면 부자 스폰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정계 진출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정계의 요 직을 독점하는 초고소득층이 생겨났으며, 이와 동시에 국민은 가난해졌다. 그 결과 원로원 정당과 국민 정당 간에 계급투쟁이 생겨났다. 국민 정당의 편에서는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Tiberius와 가이우스 그라쿠스Gaius Gracchus가 성공적인 국민원로로서 원로원 정당과 투쟁했는데, 이로써 그들은 후대 사회주의자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들의 뒤를 이어 마리우스 Marius가 국민당의 대표가 되어, 원로원 정당의 대표인 술라 Sulla와 대결했다. 술라는 식민지 전쟁에서 돌아온 자신의 원정부대를 이끌고 원로원을 점령한 자로, 훗날 스페인의 프랑코 Franco역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모로코의 원정부대를 이끌고 쿠데타에 성공해 집권한다. 그리고 파시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술라의 승리는 이른바 추방 명부(적들의 살생부)로 끝났다. 이때부터 군대가 정계의 모든 인사들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했다.
포에니전쟁 기록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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