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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릴의 안내

(북클럽/교양) 모두의교양 /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by 거제매생이 202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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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이 유럽에 물려준 유산 : 봉건주의 

카를 대제는 프랑크 왕국의 변경지역을 하나씩 정복해나감으로써 국토를 넓혔다. 그는 이 새로운 점령지역을 봉건주의로 포장했으며 이로써 새로운 유럽 국가들을 세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롬바르드 왕국을 점령해 꿀꺽 삼켰고 그 결과 교황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는 스페인의 북부지방들을 점령했다. 이곳에서부터 그는 아랍인들이 점령한 스페인을 역으로 점령해 내려갔다(이 재점령은 1492년에 완료되었다). 그리고 그는 봉건주의와 함께 기사도를 스페인으로 수출했으며 이로써 이달과 hidalgo(스페인의 세습 귀족을 뜻함)의 인물 유형을 유포시켰다

노르망디를 거점으로 해서 1066년에 프랑스화된 노르만족을 통한 영국 점령이 이루어졌다. 노르만족은 자신들의 카를식 봉건주의(군주는 봉토를 신하들에게 분배하고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 의무를 지는 정치 형태 - 옮긴이)를 영국으로 함께 가져갔으며 봉건적 중앙집권 국가를 건설했다.

그들은 시칠리아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이 했다

카를은 북독일의 고집 센 이교도인 작센족을 점령해 굴복시켰으며(그 에게는 가장 지루하고 힘든 싸움이었다), 베르덴 근처에서는 알레마니족 들을 그 수장(首長)들의 피로 시뻘겋게 물들여 북 독일인들이 남독일의 문명인들과 합심해서 하나의 조국을 형성해야만 하겠다고 확신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야만 이들도 독일의 새로운 동부 식민지 지역에서 야만적인 동부인들에게 봉건주의의 성과를 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카를 대제는 유럽의 가장 중요한 나라들의 성립을 위한 기초를 놓았다(프랑스와 베네룩스 국가들은 사실상 이미 프랑크 제국에 속해 있었다). 그는 또한 훗날 독일이라고 불리게 된 기틀을 마련해놓았다.

 

독일 그리고 독일 민족주의에 대한 중간 고찰

독일, 이것은 무엇인가? 1871년 독일 제국이 성립할 때까지 그것은 아무도 말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이었다.

독일은 없었으며 신성 로마 제국만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탈리아, 보헤미아, 동프랑크 제국, 베네룩스 국가들, 스위스 그리고 오스트리아 도 속해 있었다. 확실히 독일 왕은 있었으나 그는 체코족과 로트 링겐족 그리고 네덜란드인들을 함께 다스렸다. 따라서 나중에 존재하게 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유형의 독자적인 독일은 없었다. 따라서 독일인들은 국가를 소유한 민족이 아니었다(그들의 국가는 나중에 오스트리아, 뤼벡, 프로이센, 바 이에른 또는 리페 - 데트몰트 따위의 독일어권 부분 국가들로 나뉘어 있었다). | 그들은 1800년경에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을 때 서로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는 누구인가?”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언어, 문화 그리고 문학작품뿐이었다. 따라서 그들은우리는 문화 국민이다”또 는우리는 시인과 사상가의 민족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자기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정말로 문화가 풍부해서가 아니라 서로 공통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은우리는 독일어로 말하는 민족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치명적인 확인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나중에 히틀러에게 독일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독일 제국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기 때문이다(물론 그 자신은 오스트리아인이었으며 고급 독일어를 하지 못했으므로 당연 히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독일 제국이 독일어권까지, 예컨대 프 라하나 레발(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탈린의 옛 이름 옮긴이), 또는 체르노프치의 유대인 회당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거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마찬 가지 아니겠는가?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어를 말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 람은 영국인 아니겠는가?”(물론 그가 미국인, 뉴질랜드인, 캐나다인, 조종사 또는 외환 딜러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생각은 커다란 착각이다. 프랑스인들 에게 민족은 언어적으로 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영국인의 정 의는 '영국식 생활 English을 하며 브리튼의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그가 영어, 갈리아어, 일본어 등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지 상관없 다. 그에게 정치적 국민은 태어나면서부터 언어처럼 부여되는 숙명적인 공 동체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클럽처럼 자발적인 모임의 결과다. 누 구든지 그 클럽의 규칙인 헌법을 신봉하면 거기에 가입할 수 있다.

이로써 독일의 '민족' 개념과 서구의 민주주의 개념이 서로 달라졌다.(이 것도 독일이 걸어온 특수한 길이다).

독일인은 이제 인종적 · 언어적 민족 개념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들의 개념을 수용해야 한다. 즉 독일인은 부모가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 라 독일 땅에서 살기를 원하고 독일 헌법을 신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과 거에 촐리 코펜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한 적이 있는 까닭에 독일어를 스위스 악센트로 발음하는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

 

독일 종족

이상의 당위성을 전제로 하고, 차츰 허물을 벗으며 현재의 독일로 모습을 드러낸 인종적 · 언어적 형태를 살펴보기로 하자.

독일은 아직도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고유의 방언을 사용하는 여러 게르만족들, 정확히 말하면 여섯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이에른족...이들은 오스트리아에도 정착했다

알레마니족...이들이 정착한 곳은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포어아를베르크, 알자스 그리고 대략 바덴-뷔르템베르크다

튀링겐족....이들은 자유국가인 작센과 슐레지엔에도 정착했다(작센이라는 명칭은 왕조가 발전하면서 동쪽으로 퍼졌다). 

작센족...대략 오늘날의 니더작센과 베스트팔렌 사람들이며 나중에 메클렌부르크와 브란덴부르크 방향으로 이주했다.

프리지어족(북·동·서 프리지어족)...이들은 북해 연안에 살고 있으며 오랫동안 라인 강의 해운을 독점했다(수많은 프리지어 호텔들 참조). 

가장 복잡한 종족인 프랑크족...이들은 라인 마인 · 모젤 · 니더 프 랑크족으로 세분되며, 바이에른의 프랑켄족, 헤세인, 팰처인, 로트링 겐(로렌), 잘레랜더, 라인랜더, 프라만, 룩셈부르크인 그리고 네덜란 드인들의 선조이다(네덜란드계 프리지어인은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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