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이 유럽에 물려준 유산 : 봉건주의
카를 대제는 프랑크 왕국의 변경지역을 하나씩 정복해나감으로써 국토를 넓혔다. 그는 이 새로운 점령지역을 봉건주의로 포장했으며 이로써 새로운 유럽 국가들을 세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 그는 이탈리아의 롬바르드 왕국을 점령해 꿀꺽 삼켰고 그 결과 교황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 그는 스페인의 북부지방들을 점령했다. 이곳에서부터 그는 아랍인들이 점령한 스페인을 역으로 점령해 내려갔다(이 재점령은 1492년에 완료되었다). 그리고 그는 봉건주의와 함께 기사도를 스페인으로 수출했으며 이로써 이달과 hidalgo(스페인의 세습 귀족을 뜻함)의 인물 유형을 유포시켰다.
● 노르망디를 거점으로 해서 1066년에 프랑스화된 노르만족을 통한 영국 점령이 이루어졌다. 노르만족은 자신들의 카를식 봉건주의(군주는 봉토를 신하들에게 분배하고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 의무를 지는 정치 형태 - 옮긴이)를 영국으로 함께 가져갔으며 봉건적 중앙집권 국가를 건설했다.
● 그들은 시칠리아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이 했다.
● 카를은 북독일의 고집 센 이교도인 작센족을 점령해 굴복시켰으며(그 에게는 가장 지루하고 힘든 싸움이었다), 베르덴 근처에서는 알레마니족 들을 그 수장(首長)들의 피로 시뻘겋게 물들여 북 독일인들이 남독일의 문명인들과 합심해서 하나의 조국을 형성해야만 하겠다고 확신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야만 이들도 독일의 새로운 동부 식민지 지역에서 야만적인 동부인들에게 봉건주의의 성과를 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카를 대제는 유럽의 가장 중요한 나라들의 성립을 위한 기초를 놓았다(프랑스와 베네룩스 국가들은 사실상 이미 프랑크 제국에 속해 있었다). 그는 또한 훗날 독일이라고 불리게 된 기틀을 마련해놓았다.
독일 그리고 독일 민족주의에 대한 중간 고찰
독일, 이것은 무엇인가? 1871년 독일 제국이 성립할 때까지 그것은 아무도 말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이었다.
독일은 없었으며 신성 로마 제국만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탈리아, 보헤미아, 동프랑크 제국, 베네룩스 국가들, 스위스 그리고 오스트리아 도 속해 있었다. 확실히 독일 왕은 있었으나 그는 체코족과 로트 링겐족 그리고 네덜란드인들을 함께 다스렸다. 따라서 나중에 존재하게 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유형의 독자적인 독일은 없었다. 따라서 독일인들은 국가를 소유한 민족이 아니었다(그들의 국가는 나중에 오스트리아, 뤼벡, 프로이센, 바 이에른 또는 리페 - 데트몰트 따위의 독일어권 부분 국가들로 나뉘어 있었다). | 그들은 1800년경에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을 때 서로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는 누구인가?”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언어, 문화 그리고 문학작품뿐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는 문화 국민이다”또 는 “우리는 시인과 사상가의 민족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자기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정말로 문화가 풍부해서가 아니라 서로 공통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은 “우리는 독일어로 말하는 민족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치명적인 확인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나중에 히틀러에게 독일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독일 제국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기 때문이다(물론 그 자신은 오스트리아인이었으며 고급 독일어를 하지 못했으므로 당연 히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독일 제국이 독일어권까지, 예컨대 프 라하나 레발(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탈린의 옛 이름 옮긴이), 또는 체르노프치의 유대인 회당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거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마찬 가지 아니겠는가?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어를 말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 람은 영국인 아니겠는가?”(물론 그가 미국인, 뉴질랜드인, 캐나다인, 조종사 또는 외환 딜러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생각은 커다란 착각이다. 프랑스인들 에게 민족은 언어적으로 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영국인의 정 의는 '영국식 생활 English을 하며 브리튼의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그가 영어, 갈리아어, 일본어 등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지 상관없 다. 그에게 정치적 국민은 태어나면서부터 언어처럼 부여되는 숙명적인 공 동체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클럽처럼 자발적인 모임의 결과다. 누 구든지 그 클럽의 규칙인 헌법을 신봉하면 거기에 가입할 수 있다.
이로써 독일의 '민족' 개념과 서구의 민주주의 개념이 서로 달라졌다.(이 것도 독일이 걸어온 특수한 길이다).
독일인은 이제 인종적 · 언어적 민족 개념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들의 개념을 수용해야 한다. 즉 독일인은 부모가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 라 독일 땅에서 살기를 원하고 독일 헌법을 신봉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과 거에 촐리 코펜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한 적이 있는 까닭에 독일어를 스위스 악센트로 발음하는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
독일 종족
이상의 당위성을 전제로 하고, 차츰 허물을 벗으며 현재의 독일로 모습을 드러낸 인종적 · 언어적 형태를 살펴보기로 하자.
독일은 아직도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고유의 방언을 사용하는 여러 게르만족들, 정확히 말하면 여섯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 바이에른족...이들은 오스트리아에도 정착했다.
● 알레마니족...이들이 정착한 곳은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포어아를베르크, 알자스 그리고 대략 바덴-뷔르템베르크다.
● 튀링겐족....이들은 자유국가인 작센과 슐레지엔에도 정착했다(작센이라는 명칭은 왕조가 발전하면서 동쪽으로 퍼졌다).
● 작센족...대략 오늘날의 니더작센과 베스트팔렌 사람들이며 나중에 메클렌부르크와 브란덴부르크 방향으로 이주했다.
● 프리지어족(북·동·서 프리지어족)...이들은 북해 연안에 살고 있으며 오랫동안 라인 강의 해운을 독점했다(수많은 프리지어 호텔들 참조).
● 가장 복잡한 종족인 프랑크족...이들은 라인 마인 · 모젤 · 니더 프 랑크족으로 세분되며, 바이에른의 프랑켄족, 헤세인, 팰처인, 로트링 겐(로렌)인, 잘레랜더, 라인랜더, 프라만, 룩셈부르크인 그리고 네덜란 드인들의 선조이다(네덜란드계 프리지어인은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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