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역사
프랑스 남부 론 강어귀의 도시, 아를에는 로마 시대의 야외 모래 경기장이 오늘날까지도 온존 되어 있으며 영업을 하고 있다. 중세에는 도시 전체가 이런 거대한 경기장이었다. 도시가 오히려 이 경기장 안에 조립식으로 건설되었는데 이 경기장의 담장은 아를 시 전체의 성곽과 일치했다.
이것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근대 유럽은 로마 제국의 폐허 위에 서 성장했다. 이 폐허는 지속성의 감정을 매개한다. 이 말은 특히 정치제도 들에 해당한다. 프랑크족의 영웅 카를 Karl(샤를마뉴)대제가 서기 800년 크리스마스 축제 때 교황 레오 Leo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을 때도 그들은 자신 들이 로마 제국을 재건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카를 대제의 관료들은 법률을 라틴어로 작성했다. 지식인들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라틴어를 사 용했다. 오늘날까지도 라틴어는 로마 교회의 언어다. 특히 로마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유럽인이 역사를 배울 때 교과서로 통하며, 역사의 실험 규정처럼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후대의 유럽을 매료시킨 로마의 역사 상의 드라마와 인물들을 알아야 한다.
전사(前史, 기원전 753~200)
로마의 역사를 간단히 기술하기 위해서 필자는 기원전 200년부터 살펴보고자 하며, 그 이전의 역사는 서곡(序曲)으로 간주해 간략하게 넘어가고자 한다. 왜 하필이면 기원전 200년인가? 이때 로마가 이탈리아 전체를 통 일했기 때문이다. 헌법을 확립했고, 두 차례의 국제전쟁에서 카르타고인들 을 정복했으며, 그 후 70년간은 마케도니아 그리고 지중해 동부의 그리스화 된 지역을 꿀꺽 삼킬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753년에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 Romulus와 레무스 Remus가 로마를 세웠다. 이들은 갓난아기 때 들판에 버려졌으며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늑대 젖을 빨아먹고 있는 쌍둥이는 로마의 상징이 되었다.
기원전 510년경까지 로마는 북쪽에 사는 에트루리아 Etruscan족의 왕들이 통치했다. 이들은 해적질을 일삼는 쾌락주의자로 수많은 요리 냄비,원뿔형 석조건물 그리고 인조 치아(齒牙) 이외에는 이렇다 할 문화유산을 남기지 못했다. 그 다음에 로마는 공화국(res publica=공적公的인 일)이 되었다.
기원전 510년에서 기원전 270년 사이에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나머지 지역을 모두 정복했으며 귀족들과 평민들 간의 내전에 휩싸였다. 그 결과 헌법이 생겨났는데, 이 헌법은 거기에 명시된 모든 관직 명칭과 더불어 후대의 모든 헌법의 모태가 되었다.
로마의 역사와 전사에 대한 기록을 작성하면서 배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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